2013년 1월 23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안증회) 새 예루살렘 어머니하나님


하나님의교회(안증회)

새 예루살렘 어머니하나님

 
  출처 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안증회)는  새 예루살렘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순례 여행을 꿈꾸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희생하시며 구원을 완성시킨 골고다 언덕, 핏방울을 흘리며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 등 하나님의 흔적이 서려 있고 구원의 역사가 펼쳐졌던 현장을 목도한다는 것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끌어간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옮겨 신앙의 중심지로 삼은 이래 오늘날까지도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단순한 순례의 목적을 벗어나 재앙의 피난처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밀레니엄버그(Y2K)로 온 세상이 떠들썩했던 1999년에는 사상 초유의 인파로 대혼잡을 빚기도 했으며, 전쟁의 징후가 느껴진다 싶으면 예루살렘 내의 호텔은 피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는  새 예루살렘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는 신앙의 궁극적 목적이자 염원인 구원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한 행위인데,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자고이래 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구원이 태동하며 예언이 꿈틀거리는, 아주 특별하고 성스러운 장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 그럼 예루살렘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영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실 리 만무합니다. 과연 예루살렘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그 해답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근간이 되고 있는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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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아라비아에 있는 예루살렘 말고도 또 다른 예루살렘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예루살렘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이사야 선지자와 사도 요한이 보았던 예루살렘은 참으로 영묘하고 신비롭기만 합니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라는 묘사 들이 그것입니다.

이 묘사들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아라비아에 있는 예루살렘처럼 고정된 장소, 땅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여성, 특히 어머니의 모습으로 인류에게 사랑과 자비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 수수께끼 같은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한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해줍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 다시 말해 하늘 예루살렘이 시대 인류가 찾아야 할 또 다른예루살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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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찾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굳이 비행기 티켓을 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물론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일은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너희의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했던 사도 바울의 말대로입니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실종 아동의 부모들이 그렇듯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아 이 땅까지 오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새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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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예방 위한 음악회-국제신문 보도


하나님의교회 학생들이 음악회를 개최하였음을 국제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학생은 학생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가득담아...사랑으로 힐링~♥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900&key=20130123.22009210011 주소복사

[학교폭력 예방 위한 음악회]

22일 오후 부산 수영구 광안동 하나님의 교회에서 세계복음선교협회 주최로 학업 스트레스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위로하는 음악여행 '채움&다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② 하나님의교회(안증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② 하나님의교회(안증회)


하나님의교회(안증회)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디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여리고 성이 무섭게 버티며 서 있었고, 철옹의 요새인 여리고 성을 점령하지 않고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수 없는 실정에서 하나님의 지시가 하달되었습니다.
성을 점령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은 여리고 성을 6일 동안 하루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칠일 째는 일곱 바퀴를 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토성도 쌓고, 성문을 부수는 공성퇴도 만들고, 사다리, , , 방패 등등 여러가지의 도구를 제작하고, 작전을 세워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상식을 초월하는 이상한 작전을 지시하셨고, 상식적인 판단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은 결코, 그 일을 행할 수 없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첫째 날 여리고 성을 한 바퀴 돌았지만, 아무런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로 성을 돌았지만, 여리고 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대적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무척 애가 탔을것입니다.
차라리 이 시간에 칼이나 갈았으면, 창이나 하나 더 만들었으면, 공성퇴를 만들어 성문을 깨부술 준비나 하였으면 더욱 더 보람된 시간이 될 것이라는.. 극히 상식적이며,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일곱째 날, 성을 일곱 바퀴 도는 마지막 순간에는 그러한 절망감이 더 깊이 파고 들어 과연, 성이 무너질 것인지, 이러다가 결국은 지쳐 쓰러지지나 않을 것인지 등 회의감에 빠져 있는 백성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결과를 주셨습니까?
온 백성이 여리고 성을 향하여 외치는 순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지만 철옹의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순식간에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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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애굽 땅에서 해방되어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절대적인 순종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60만 장정이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서 317~19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따르던 사람들과 상식적인 자기 생각에 맞춰 주어진 상황에 대처했던 사람들은, 생명과 사망이라는 극과 극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음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절대적인 순종이 없이는 결코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지금가지 성경을 통하여 확인해 본 결과입니다.
인간의 상식을 뛰어 넘는 일에도 절대적인 순종만 있다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계명을 주시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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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지키든, 일요일을 지키든 칠일 중, 하루를 정하여 쉬고 또,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 혹은, 유월절은 지키지 않더라도 1225일을 성탄절로 정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면, 하나님게서 기뻐하시지 않겠느냐? 심지어는 유월절이 아니더라도 매 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씩 성찬식을 행하니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교만한 주장을 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주장보다 못한 것으로 격하시켜 놓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자들이 생각할 때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깨끗한 강물이 아닌 더러운 요단강에서 일곱 번씩이나 몸을 씻는 행위,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는 커녕, 성 주위만 빙빙 도는 일, 귀한 자식을 산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행동, 맑은 날에 산 꼭대기에서 배를 만드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노아의 모습은 모두가, 정상이 아닌 미친 행동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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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라고 요구하실 때에는 반드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준비케 하시고 실천시키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내 생각이나 내 주장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절대적인 순종과 행위를 나타내어야만 완성품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것을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독재를 하시기 위하여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앞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겐 텔레비전에 사람이나 동물, 자연의 영상이 사실 그대로 움직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치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불과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그 시대 사람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한 내용이요, 텔레비전이라는 기계가 있다고 설명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로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과 100년 아니, 10년이나 1년 뒤의 일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뿐더러, 사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지의 존재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고 무엇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말씀에도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3:12)
하신 것을 보면, 사람들은 원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가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의롭고 유익된 결과를 예비해 두고 계시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 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믿지 못하여 때로는 고통하고 때로는 방황하다가 사망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지켜 행하고, 그러한 행위 뒤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는 것 뿐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주시기 위하여 절대적인 계명을 주신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이 곧 구원의 지름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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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➀ 하나님의교회(안증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하나님의교회(안증회)

하나님의교회(안증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말씀을 절대적으로 행하게 될 때는 당연히 절대적인 결과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가감하지 말라'(4:2), '더하거나 빼지 말라'(22:18)고 하시면서 더하면 성경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 받게 되고, 제하면 영생의 자리를 박탈해 버리시겠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절대적이며 확실한 결과를 동반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해 주시는 장면 속에서 준엄하신 하나님의 절대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100세가 된 아브라함에게는 상속자로서 이삭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절대적인 존재요, 자신의 소유물 중에서도 가장 귀한 보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무서운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의 여부를 알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절대적인 소유욕보다 더 절대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상식적인 생각만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 불평하며 하나님의 처사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제게 이삭을 주셨습니까? 제가 언제 자식을 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자식을 주셨다가 빼앗아 가시며 잔인하게도 늙은이의 한 가닥 소망을 꺾어 버리시며 어려운 고통을 주십니까?'라는 원망 속에 빠져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모든 생사화복의 결과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이삭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하나님의 자비의 음성으로 이삭을 살리시는 은혜를 받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칭송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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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방주를 예비하였던 행위 속에서도 절대적인 믿음의 결과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아니하는 맑은 날에 하나님은 산 꼭대기에 큰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방주의 규모만 하더라도 길이가 137cm, 폭이 23cm, 높이가 14cm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이었습니다.
방주 제작에 소요될 목재나 그 외 재료들 그리고, 배를 만드는 기술 등 현대의 기술로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규모이지만, 노아 당시의 미개한 기술 수준으로 본다면, 오늘날 우주 왕복선을 만드는 것에 해당하는 고도의 기술과 재력이 소요되는 거대한 공사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노아는 결코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고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작업은 최소한 40~1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인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순종했던 결과로 모두가 다 홍수로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생각했던 결과는 실로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 주었음을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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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 나라의 군대장관으로 있던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큰 병을 고침받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 고민하던 중 집에서 부리던 히브리인 하녀의 소개로 이스라엘 땅에 사는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직접 만나 주지 않고 수하의 사환을 보내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전갈만 보냈습니다.
한 나라의 군대장관이라는 체면을 생각했던 나아만은 엘리사의 처사를 부당하게 여겨 발끈 화를 내면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아만의 생각에는 엘리사 선지자가 자기에게로 나아와 상처에 손을 얹고, 정성스레 안수하여 병을 낫게 해 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었고, 그 방법으로는 도저히 병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선지자 엘리사의 말에 절대적인 순종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나아만 장군이 끝까지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일러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을 하지 못했다면, 영영 문둥병자로서 불행한 생애를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돌이켜 절대적인 순종의 자세로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고는 어린 아이와 같은 피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왕하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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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 광야 생활 40년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순종이 요구되었습니다.
물이 강둑을 범람하는 장마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멘 제사장을 선두로 무조건 물로 들어가 강을 건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강을 건너기 위해서 나룻배 아니면, 최소한 뗏목 정도라도 있어야 될 것이고 당연히 이것들을 요구해야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여호수아는 믿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마음으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자마자 그렇게 많았던 물이 저 멀리 밀려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처럼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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